
[ 한국미디어뉴스 이원영 기자 ] 최근 가천대 길병원을 찾은 68세 여성 환자. 과수원에서 감을 따던 중 갑자기 고열과 두통, 근육통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그냥 환절기 단순 감기로 생각하고 며칠을 버티다가 상태가 악화돼 응급실을 방문했다.
진료 과정 중 환자의 겨드랑이 피부에서 검은 딱지가 발견됐고, 혈액검사 결과 쯔쯔가무시병으로 확진됐다. 다행히도 독시사이클린 항생제를 투여한 후 빠르게 호전돼 현재는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폐렴이나 신부전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가을철 성묘와 벌초 그리고 단풍 놀이 등으로 야외 활동이 한창인 요즘, 무심코 들어간 풀숲에서 우리 건강이 위협 당 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시혜진 교수는 ‘쯔쯔가무시병’은 추석을 전후한 가을철에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예방 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쯔쯔가무시병’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작은 벌레’라는 뜻처럼, 진드기 유충을 매개로 전파되는 감염병을 의미한다. 이 병은 리케치아과에 속하는 세균인 ‘오리엔티아 쯔쯔가무시(Orientia tsutsugamushi)’에 감염돼 발생한다. 감염은 주로 풀이나 설치류에 기생하는 털 진드기가 사람의 피부를 물면서 이뤄진다. 농작업이나 벌초, 성묘, 도토리와 밤 줍기, 등산과 같은 일상적인 야외활동 중에도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쯔쯔가무시증 전체 환자의 대다수가 9월부터 11월 사이인 가을철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최근 3년간 환자의 74.3%가 이 시기에 발생했다. 이는 진드기의 밀도가 평균기온이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9월부터 증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쯔쯔가무시병에 감염된 뒤 보통 6일에서 18일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는 갑작스러운 두통, 고열, 오한, 근육통, 피부 발진 등을 호소한다. 특히 환자의 약 90%에서는 진드기에 물린 부위에 검은 딱지가 생기는데, 이를 가피(eschar)라고 한다. 가피는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허리, 복부 주름 등 피부가 얇고 접히는 부위에 잘 발생하며, 쯔쯔가무시병 진단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모든 환자에게 가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 감별 진단이 어렵다. 조기 치료하지 않으면 드물게 기관지염, 폐렴, 심근염이 동반되거나 수막염 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심한 경우에는 신부전 등 합병증으로 진행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9월부터 11월 사이에 환자가 집중되며, 추석 전후로 농촌과 산간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논과 밭, 과수원, 등산로 주변 풀숲이 대표적인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농촌에 거주하는 50대 이상 여성에게서 주로 발견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등산이나 단풍놀이 등 야외활동 증가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도시 거주자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해 전통적으로 한정됐던 유행 시기가 점차 넓어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쯔쯔가무시병은 비교적 항생제 치료 효과가 좋은 질환이다. 테트라사이클린 계열의 항생제, 특히 독시사이클린을 사용하면 대체로 호전된다. 그러나 치료 시기를 놓치면 뇌수막염, 폐렴, 신부전과 같은 중증 합병증으로 악화될 수 있으며, 고령 환자의 경우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야외활동 이후 두통과 발열, 오한 등 심한 감기 증세가 나타나거나 벌레에 물린 흔적이 확인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가까운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
예방백신은 현재까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진드기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생활 속 예방이 최선이다. 야외활동을 할 때는 반드시 긴 팔, 긴 바지, 양말을 착용해 피부 노출을 최소화해야 하고, 기피제를 뿌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작업이나 활동을 마친 후에는 곧바로 샤워를 해 피부에 붙은 진드기를 제거하고, 착용했던 작업복이나 속옷, 양말 등을 즉시 세탁해야 한다. 또한 유행 시기에는 갑작스러운 발열이 나타나면 반드시 진드기 물린 자국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감염내과 시혜진 교수는 “쯔쯔가무시병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지만 조기 진단이 늦어지면 뇌수막염이나 신부전 같은 합병증으로 악화될 수 있고, 고령층에서는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가을철 야외활동이 많은 시기에는 작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긴 옷을 착용하고, 귀가 후 바로 샤워와 세탁을 하는 등 예방 수칙을 생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야외활동 후 갑작스러운 고열이나 심한 감기 증상이 나타날 경우에는 절대 가볍게 넘기지 말고 반드시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쯔쯔가무시병은 작은 벌레가 옮기는 질병이지만, 그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비교적 간단한 치료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조기 진단과 예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단풍이 물들고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계절, 건강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를 경계하며 예방의식을 갖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