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미디어뉴스 김풍옥 기자 ]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가 마침내 ‘세상 짓기’를 완공하고 9월 4일(목) 오전 9시 개장식을 시작으로 60일간의 대장정에 오른다.
세계 72개국 1천300여 명 작가의 작품 2,500여 점. 규모만으로도 역대급을 자부하는 이번 공예비엔날레는 ‘세상 짓기 Re_Crafting Tomorrow’라는 주제에 걸맞게,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 의식주를 기반으로 인류의 삶과 긴밀히 관계 맺어온 공예를 주춧돌 삼아, 미술-디자인-건축을 아우르고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며 공동체와 함께 지구의 내일을 고민하는 공예의 새로운 정체성과 가능성을 구조적이면서도 명징한 서사로 쌓아 올렸다.
3일 사전 프레스투어에 참여한 국내외 언론은 “본전시를 비롯해 모든 전시 공간과 배치된 작품, 동선 하나하나까지 세심한 설계도에 따라 진심을 다해 지은 근사한 건축물처럼 감각적이면서 압도적”이라며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청주가 왜 세계공예도시인지를 보여주는 증명서가 될 것”이라 평했다.
▶ 본전시-보편문명은 어떻게 탐미주의를 거쳐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가 되는가
디지털 문명이 초래한 이미지 과잉과 속도의 시대, 값비싼 명품과 일회용품이 공존하는 가난한 풍요의 시대, 개발과 성장이 재앙을 초래하는 위기의 시대,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쓰레기만 늘어가고 인간의 죄의식도 덩달아 높아지는 시대에 ‘공예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를 대변하는 본전시는 바로 이 문제의식에 대한 응답이다.
강재영 예술감독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용품에서 출발한 보편문명 공예가 어떻게 탐미주의를 거쳐 모든 존재자를 위한 공예이자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가 되는지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비엔날레는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행위’를 통해 공예가 새로운 문명을 생성해 가는 현장”이라고 전했다.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본전시에는 16개국 55작가팀 148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1. 보편문명으로서의 공예 Crafts as Metaculture
공예는 인간 삶의 근본 요소인 의식주의 생산·소비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렇기에 공예는 모든 문명의 출발점이며, 그 토대 위에 지적-문화적-기술적 융합과 혁신이 더해지면서 건축, 디자인, 회화 등 다채로운 분과의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드로잉과 콜라주, 벽지, 조각, 설치,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아름답지만 비판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프란체스코 시메티(이탈리아), 도자기의 기형을 새롭게 결합하여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구조체를 완성하는 윤상현(한국),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가능한 박테리아를 주입해, 작품 속에 배치된 꽃이 점진적으로 분해되고 마침내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드는 마르친 루삭(폴란드), 전통을 해체해 새로운 공간을 짓는 나카무라 타쿠오(일본) 등 10팀의 19명 작가가 보여줄 ‘보편문명으로서의 공예’는 다양한 분과와 협력하고 진화하는 공예의 새로운 얼굴이다.
그 얼굴들에 놀라고 감탄하다 어느 순간 맞닥뜨릴 ‘바람과 달, 술과 가야금, 시와 그림 사이로 흐르는 멋과 흥 – 풍류’는 ‘세상 짓기’의 설계자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지은 ‘중정中庭’ 같은 쉼표다.
#2. 탐미주의자를 위한 공예 Crafts for Aestheticians
영혼을 울리는 숭고함, 경외감마저 드는 미적 극치… 이러한 찬사는 애초부터 공예의 것이었음을 ‘탐미주의자를 위한 공예’는 보여준다.
얇은 나무 조각을 뜨거운 인두로 구부리고, 곡선의 응력을 조절한 뒤 사포질과 구리선 봉합을 통해 마감하는 지난함으로 유기적인 간결함을 완성하는 김희찬(한국), 종이를 활용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압델니세르 이브라힘(이집트), 인간·동물·식물의 해부학적 요소가 혼종된 유기적 도자 오브제로 매혹적이지만 낯선 생태계를 창조하는 멜리스 부이룩(튀르키예) 등 AI시대에도 공예는 여전히 인간만이 가진 미적 영역임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3. 모든 존재자를 위한 공예 Crafts for All Beings
인간의 의식주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공예는 ‘인간’만을 위해 존재해선 안 된다. 마크 트웨인의 경고처럼 ‘불필요한 필수품을 무한대로 찍어온’ 현대문명은 전지구적 환경위기와 다양한 생명종의 멸종을 야기했고, 공예 역시 유죄다.
‘모든 존재자를 위한 공예’는 공예가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윤리를 바꾸려는 시도다. 환경 파괴, 서식지 상실, 종의 멸종,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섬유라는 매체에 담아내며 다양한 문화권의 여성들과 협업으로 스토리텔링 자수 작업을 선보이는 수지 비커리(호주), 전쟁의 폭력성을 화려한 수공예로 전환하며 치유에 대한 서사를 구축해온 카티야 트라불시(레바논), 유리로 만든 비닐을 통해 투명한 역설을 시각화하는 리 위푸(중국) 등 13인이 지구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작품에 담았다.
#4.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 Craft with Communities
공예는 손으로 하지만 마음의 일이며 사랑의 일이다. 그렇기에 손의 기술은 모든 사람과 사회를 잇는 핏줄이며, 작품이 아닌 관계망을 함께 엮어가는 과정이다.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는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행위가 사회적 공유이자 세대간 연결이며 새로운 문명을 생성하는 현장이라 말한다.
호주 오지와 사막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현대 섬유 예술을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찬피 데저트 위버스(호주), 한국 사회에서 쌀이 갖는 의미에 주목해 기록하고 관찰하며 공동체를 탐구하는 강진주(한국), 지역 주민들과 협업하는 제작시스템을 구축하고 안정적인 수입과 자립 기반을 제공하며 행복을 엮는 코라꼿 아롬디(태국), 지난 3월 경북 산불에 타버린 천년 사찰 고운사와 나무들을 삶을 지탱하는 수십 개의 지팡이로 되살린 홍림회(한국) 등이 새로운 문명의 생성자로 참여했다.
▶ 특별하고 특별하다 – 특별전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의 본전시 못지않은 백미는 특별전이다.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신규 아트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특별전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 엮음과 짜임’은 섬유를 매개로 전통과 현대,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의 문화를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직조하며 초지역적 예술협업 시대의 서막을 연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영국 맨체스터 휘트워스 미술관 공동기획, 인도 국립공예박물관 협력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과 인도의 작가 8팀은 서로 다른 문화적·미학적 기반 위에서 자신의 진리를 발현하면서도 서로를 반사하고 공명하며 제작한 신작을 선보인다.
하나의 달빛이 천 개의 강물 위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을 바탕으로 섬유 노동의 명상적 수행성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직조한 작가 장연순(한국), 관람자의 움직임과 호흡에 반응하는 얇은 베일 작업으로 한국과 인도 두 세계의 숨결을 시공간적 풍경에 담아낸 작가 유정혜(한국), 인도 쿠치 지역 공예 공동체와의 협업으로 여성들이 계승해 온 전통의 아플리케, 자수 기법으로 감각적 작품을 완성한 홍영인(한국), 영국 식민지 시기 인도의 기계직조 산업화와 자립에 대한 정치적 서사를 상징하는 재료 카디면을 활용한 섬유조각부터 자신만의 ‘소미사’로 인간 생애의 궤적을 담은 의복 등을 완성한 작가 고소미(한국), 4팀의 작품은 그 자체로 먹먹한 감동이다.
여기에, 한국 불교예술과 인도의 구조적 유사성을 영감으로 직조 패널 신작을 선보인 보이토(인도), 두 장소를 잇는 ‘다리’의 상징성을 대형 섬유 설치 작업으로 표현한 수막쉬 싱(인도), 한국 리서치 트립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악기 ‘종(鐘)’을 철학적 섬유 회화로 풀어낸 카이무라이(인도), 획일화된 글로벌 패션사업에 느림과 협업으로 반기를 든 대안적 실천가 페로(인도)의 작품, 또한 오랜 섬유 역사를 가진 휘트워스 미술관의 희귀 소장품이 더해진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엮음과 짜임’은 이번 비엔날레서 놓쳐선 안 될 특별함이다.
특별함에 특별함을 더하는 ‘성파선예전(性坡禪藝展)’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1960년 출가 이래 수행자이자 예술가로서 서예, 한국화, 도자, 조각, 염색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온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의 평생 화업이 담긴 이번 전시 제목은 ‘명명백백(明明白白)’이다. ‘밝고 밝고 희고 또 희다’는 제목처럼 성파 스님은 이번 특별전에서 무려 100미터에 달하는 하나의 한지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전통 한지 제작 기법의 한계를 넘어선, 새벽 눈길처럼 아득하고도 희고 흰 이 작품을 그저 가만히 응시하며 걷다 보면, 모든 번뇌는 사라지고 사유의 세계가 열린다.
▶ 태국 공예, 그 유연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 – 초대국가전
청주공예비엔날레 초대국가전 사상 첫 단독 아시아 주빈국, 태국의 공예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역시 이번 비엔날레를 놓쳐선 안 될 이유다.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큐레이터에게 수여하는 바드 컬리지의 오드리 어마스 큐레이터상 2025년 수상자인 그리티야 가위웡 감독이 기획한 이번 초대국가전의 주제는 ‘유연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다.
빠른 속도와 상업화 속에서도 고유한 문화와 정신을 지켜낸 태국의 공예를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시간 제약 없이 창작하기 △테크노 공예 △시간은 진정한 마음의 집 등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됐다.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천을 활용한 윗 핌칸차나퐁 작가의 설치작품 ‘미로’를 수행하듯 걷다 보면, 돈오(頓悟)의 순간처럼 태국 공예의 정수들을 발견하게 된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에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유연한 시간 속으로 인도하는 외부 설치작품, 올존의 ‘흐름을 담다’와 9월 9일~14일 펼쳐지는 ‘태국 문화주간’도 지나쳐선 안 된다.
▶ 전문가부터 어린이 관객까지 모두에게 열린비엔날레
1999년 공예비엔날레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27년간 글로벌 공예 담론을 제시해온 청주답게 개막 전야인 9월 3일부터 국내외 공예 석학들과 내로라하는 공예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청주공예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국제공예포럼은 짧은 브리핑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와 공예 철학을 나누는 ‘페차쿠차’부터, 공예의 사회적 역할을 논하는 ‘콜로키움’, 실천적 공예를 제시하는 ‘공예로 세상 짓기’까지, 글로벌 공예리더로서의 청주를 다시금 확인시킬 것이다.
공예와 함께 자라날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기도 하다. 지난 회(2023년)부터 어린이비엔날레를 선보여온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이번엔 놀이하듯 자연스럽게, 누구나 공예를 만날 수 있는 [누구나 마을]을 지었다. ‘조각조각 집’, ‘훨훨 양복점’, ‘표정 미술관’ 등 이름만으로도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린이비엔날레는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지향하는 열린비엔날레의 상징이다.
▶ 4일 개막식에서 세계공예도시 청주가 지은 새로운 세상 선포
4일 오전 9시 개장식을 시작으로 관람객 맞이에 들어가는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는 같은 날 오후 5시 30분 문화제조창 야외광장에서 개막식을 갖고, 세계공예도시 청주가 지은 새로운 세상을 선포한다.
조직위원장인 이범석 청주시장을 비롯해 태국과 키르기즈 정부 인사 등 국내외 내빈과 참여작가,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하는 이날 개막식에서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4반세기 역사를 역동적이고 화려한 춤으로 담아낸 무대부터 세계 공예계 라이징스타의 등장을 알리는 2025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시상식 등이 펼쳐진다.
조직위원장인 이범석 청주시장은 “9월 4일, 세계공예도시 청주는 세상과 공예의 가치를 연결해 공예로 새로운 세상을 짓는 역사적인 현장이 될 것”이라며 “환경을 생각하는 공예, 공동체를 위한 공예, 사회적 갈등과 문명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예를 지향하는 청주가 준비한 60일간의 공예 향연, 역대급 규모와 세계 최정상급 수준의 작품으로 더 높은 문화의 힘을 보여줄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초대의 말을 전했다.
한편, 9월 4일 개막하는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오는 11월 2일(일)까지 60일간 문화제조창과 청주시 일원에서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며, 추석 연휴를 제외한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AI 오디오가이드와 도슨트 프로그램으로 더욱 실감나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