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미디어뉴스 이원희 기자 ]
지난 2025년 봄, 우리는 또 하나의 격동기를 지나고 있다.
정치는 혼란에 빠졌고, 경제는 불확실성의 나락에 놓였으며, 사회는 깊은 분열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있다.
갈등은 일상이 되었고, 냉소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아래, 우리가 직면한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대한 과제는 '신뢰의 회복'이다.
신뢰는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그것은 법이나 제도보다도 먼저 존재하는,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가정에서는 가족 간의 신뢰가 삶의 안정을 주며, 시장에서는 소비자와 기업 간의 신뢰가 경제 활동의 전제가 된다.
정치에서 신뢰는 국민과 권력자 간의 암묵적인 계약이며, 사회 전체로 보자면 신뢰는 공공선에 대한 합의와 존중을 가능케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위기는 단순히 정책의 실패나 외부 변수의 영향만이 아닌, 근본적으로 ‘신뢰의 붕괴’라는 내적 균열에서 기인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일련의 내홍은 그 단적인 사례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반복되는 내부 분열과 각종 의혹은 국민에게 실망을 넘어 냉소를 안기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치인을 위한 생존 게임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정치 회복’은 허울 좋은 구호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국민은 더 이상 침묵하거나 참고 견디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의심하고, 비판하며, 때로는 냉정히 외면함으로써 ‘불신’이라는 형태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경제적 불안 역시 신뢰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 만성화된 청년 실업은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과거에는 ‘노력하면 나아진다’는 믿음이 사회의 전제였지만, 오늘날 그 전제는 허물어졌다.
많은 이들이 '내일'을 상상하기 어려워하고,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고 느낀다.
경제 시스템이 더 이상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이어진다.
사회적 계약이 무너진 자리에는 불평등과 박탈감만이 남는다.
더 깊은 문제는 인간 관계의 층위에서 드러난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연결을 주었지만, 동시에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약화시켰다.
인터넷과 SNS는 목소리를 증폭시켰지만, 혐오와 단절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점점 더 자신과 다른 이들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때로는 혐오한다. 빠르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손쉽게 낙인을 찍는 사회에서 신뢰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신뢰 없는 사회는 결국 고립과 불안을 확대시키며, 공동체 전체의 붕괴를 재촉할 뿐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이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법은 시스템의 개편이나 제도의 수정보다 먼저 '의지의 문제'라는 점이다.
회복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적 결단과 반복되는 실천을 통해만 가능하다.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말로만 개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태도와 일관된 행동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
언론은 자극적 보도보다 사실 기반의 보도로, 감시와 비판을 넘어서 공동체를 위한 건설적 상상력을 제시해야 한다.
시민 역시 비난을 넘어선 참여와 연대의 방식으로 사회 회복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위기는 늘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기회를 살릴 것인가, 놓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모두의 과제이며, 무엇보다도 ‘다시 믿고 싶은’ 사회에 대한 열망이 모일 때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함께 묻고, 함께 응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응답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 시대의 혼란은 새로운 사회적 약속을 만드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회복의 첫걸음을 내디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