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미디어뉴스 김서안 기자 ] 전력 계통 현장에서 30여 년을 보냈다.
345kV 초고압 송전선로가 산을 넘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 아래에는 늘 주민들의 삶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은 종종 한숨과 갈등, 그리고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대도시의 불빛을 밝히는 동안, 발전소 인근 지역은 환경 부담과 건강 우려, 재산권 침해라는 무게를 오랫동안 떠안아 왔다.
이 구조는 단순한 지역 간 격차를 넘어선다. 생산지는 희생하고 소비지는 혜택을 누리는 비대칭 구조, 이른바 ‘에너지 식민지’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유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발전과 송전 과정에서 축적된 사회적 갈등의 압축된 표현이다.
대표적으로 밀양 송전탑 갈등은 국가적 필요와 지역 주민의 삶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의 갈등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선택의 기준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경제성’과 ‘시급성’이라는 지표를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 숫자들에는 지역 주민이 감당하는 환경 비용, 건강 위험, 공동체 해체의 값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비용을 외부화한 채 계산된 효율성은 온전한 효율성이 아니다.
송전선로 지중화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지중화는 단순히 “비용이 많이 드는 대안”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 비용과 안전, 환경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할 정책 선택지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예산은 의지의 결과이지, 의지를 대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전환의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의 시행은 중앙집중형 에너지 체계에서 벗어나, 생산지와 소비지의 균형을 재설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제공한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이 그 혜택을 일정 부분 공유하는 구조, 즉 ‘에너지 분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다.
보령은 이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다. 발전 인프라를 오랫동안 감당해 온 지역으로서, 이제는 다음과 같은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 정당하다.
첫째, 송전 인프라 구축 시 지역 수용성을 전제로 한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지중화를 포함한 대안 검토에서 사회적 비용을 정식으로 반영해야 한다.
셋째, 발전소 인근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전기요금 혜택과 지역 환원 정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넷째, 보령을 분산에너지 거점, 즉 ‘에너지 특구’로 지정해 생산과 소비의 균형 모델을 실험해야 한다.
이것은 특혜 요구가 아니라, 균형 회복에 대한 요구다. 지금까지 한쪽에 집중됐던 부담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가 만든 전기의 혜택은 멀리서 누리고, 그 과정의 부담은 지역에 남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같은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전기가 더 이상 누군가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권리와 존중 위에서 흐르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보령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보령 시민의 삶을 먼저 풍요롭게 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환경까지 함께 지키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의 최소 조건이다.
전기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질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공공재다. 이제 그 흐름의 방향을 다시 설계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