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 럼 ]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은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러나 때로는 그 흔적이 쌓이고 쌓여 집 안이 쓰레기와 낡은 물건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신문 사회면에서 심심찮게 보도되는 '쓰레기 집 노인'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현관 앞까지 밀려든 상자와 봉지,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거실, 오래전 고장 난 가전제품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부엌. 이는 단순한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노년의 삶을 옥죄는 형상이다.
심리학은 이를 '저장 강박장애(Hoarding Disorder, HD)'라 부른다.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DSM-5에서 이를 독립 진단군으로 분류했고, Mathews(2014)는 HD를 '버리기 어려운 마음과 과도한 축적 욕구가 삶의 기능을 심각히 방해하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연구는 일반 인구의 2~4%가 HD 특성을 보이며(Stumpf et al., 2018), 고령층에서는 6% 이상으로 높아진다고 보고한다.
Levy(2019)는 노년의 저장 강박이 단순한 습관을 넘어 우울과 고립을 심화시키고, 일상의 기능까지 크게 저하한다고 밝혔다. 국내 연구 또한 50세 이상 1인 가구에서 과도한 취득과 버리지 못함, 기능 저하와 정서적 고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노년기의 저장 강박은 단순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쌓여 있는 물건은 생활 공간을 제한하고, 안전사고를 불러오며, 위생과 건강마저 위협한다.
해외 연구(Ayers et al.)는 저장 강박을 가진 노인의 90%가 고혈압이나 수면무호흡증 같은 만성질환을 동시에 겪는다고 보고했다.
결국 버리지 못하는 습관은 마음의 짐을 늘릴 뿐 아니라 삶 전체를 무겁게 짓누른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버리라는 극단적인 태도가 아니다.
게으르게 쌓아두는 습관을 줄이고, 삶의 공간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버린다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정리를 통해 얻는 새로운 시작이다. 정리는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은 다시 관계와 기회를 불러온다.
일본에는 '단샤리(斷捨離)'라는 철학이 있다. 이는 불필요한 것이 들어오는 길을 끊고, 이미 쌓인 것을 비우며, 집착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삶을 가볍게 하다는 뜻이다.
우리 전통에도 비슷한 정신이 있다. 유교에서 강조된 절제와 검소함은 불필요한 물건이나 사치를 멀리하고 꼭 필요한 것만을 지니는 삶을 미덕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단출한 살림을 유지하며 마음의 청렴과 삶의 품격을 지켰고, 검약 속에서 오히려 정신적 여유를 추구했다.
이러한 태도는 일본의 단샤리와 다른 뿌리에서 나왔지만, 결국 '덜어냄 속에서 더 깊어짐을 얻는다'라는 공통의 지혜로 이어진다.
오늘날 물질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이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샤리가 실천적 정리 철학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우리의 절제와 검소함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삶의 여백을 지키는 지혜로 이어질 수 있다.
노년의 비움은 종교적 지혜와도 맞닿아 있다.
불교의 무소유는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길을 말하고, 기독교의 가르침은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고 이웃과 나누는 삶을 권한다.
두 전통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공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버림이 곧 채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제 노년으로 향하는 삶은 잘 버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쓸모없는 물건을 내려놓는 일은 쌓여 있는 감정을 비워내는 일이 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애초에 사지 않는 절제는 삶을 더 단순하고 가볍게 만든다.
노인의 지혜는 더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다. 남은 것을 베풀고,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으며, 새로운 여백을 열어가는 데 있다.
버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손에 쥔 것을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두 손을 자유롭게 하고, 그 빈손으로 누군가를 잡을 수 있다.
물건을 비운 자리는 곧 관계와 기억, 그리고 사랑이 머무는 공간이 된다.
나이 들어가는 삶은 비움의 지혜 속에서 더 빛나고, 그 빛은
우리를 가볍고 따뜻하게 감싸준다.
한국미디어뉴스 황영수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