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반복적으로 묻는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말이다. 재난의 원인을 조사하고 법적 책임을 규명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이런 재난이 반복되는가?”라는 것이다. 재난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불행이 아니다. 대부분의 재난은 무관심과 방심, 안전불감증과 책임회피가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재난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사고 자체보다 그 사회의 안전문화와 가치체계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국민안전인성'이다. 국민안전인성이란 단순히 안전수칙을 알고 준수하는 수준을 넘어 생명을 존중하고 공동체의 안전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하며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태도와 가치관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안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안전을 실천하는 인격적 역량이다. 필자는 국민안전인성을 안전의식, 안전윤리, 안전책임, 안전배려, 안전실천이 통합된 국민적 품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국민안전인성 교육문화 연구회』에서는, 이제 “왜! 안전인성에 주목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공저 집필중에 있다.
그렇다면 국민안전인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가정교육이나 학교 교육을 떠올린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한 사회의 안전문화는 언제나 최고지도자의 철학과 태도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중국 고대 왕조에서는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황제가 자신을 돌아보는 죄기조(罪己詔)를 발표하였다. 이는 단순한 정치행위가 아니었다. 백성들에게 "국가의 최고책임자가 여러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는 과정이었다. 당나라 태종께서는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민심과 책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도 비슷한 가르침을 남겼다. 이른바, "상량불정하량왜(上梁不正下梁歪)”즉, 대들보가 바르지 않으면 서까래도 기울어진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최고경영자와 최고지도자의 안전철학이 조직 전체의 안전문화를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대형 사고가 발생한 조직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현장의 실수보다 더 큰 문제는 경영층의 안전 무관심이었다. 안전예산 축소, 형식적 점검, 실적 중심의 조직문화, 위험경고 무시 등이 누적되다가 결국 재난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안전선진국과 우수기업들은 최고책임자가 직접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선언하고 실천한다. 결국 안전문화는 제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이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기업에서는 ESG 경영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핵심에는 안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높은 수익을 창출하더라도 노동자의 생명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조직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이다. 국방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 어떤 발전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최고책임자의 책무는 단순히 사고 발생 후 사과하거나 문책을 받는 데 있지 않다. 진정한 책임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데 있다.
영국의 안전과학자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은 대형 사고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스위스 치즈 모델'을 제시하였다. 하나의 사고는 단일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방어벽에 구멍이 생기면서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최고책임자의 역할은 바로 그 구멍을 미리 발견하여 막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한 뒤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책무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안전인성이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국민안전인성 관점에서 볼 때 최고책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문성 이전에 생명존중 의식이다. 사람을 비용으로 보지 않고, 안전을 투자로 인식하며, 위험을 방치하지 않는 태도이다.
공자의 말씀에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먼저 바로 세운 뒤 세상을 다스리라는 뜻이다. 오늘날 최고책임자에게 필요한 덕목도 같은 원리이다. 스스로 안전의 가치를 내면화하지 못한 지도자가 안전한 국가와 조직을 만들 수는 없다.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장관이 물러나고, 지휘관의 승진이 제한되며, 때로는 정권의 운명까지 바뀐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은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사회 전체에 안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다시는 유사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결국 재난은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안전문화는 지도자의 인격에서 시작된다. 국민안전인성은 국민만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사람은 국가와 조직의 최고책임자이다. 최고책임자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때 국민은 안전을 신뢰하게 되고, 조직은 안전을 문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가 뿌리내릴 때 비로소 재난에 강한 국가,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안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며,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다. 그래서 국민안전인성의 출발점은 언제나 최고책임자의 책무와 리더십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김성제 프로필
○ 서울디지털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객원교수
○ 전)건국대 대학원 안보재난관리학과 겸임교수
○ 서울시립대 대학원 재난과학박사(Ph. D)
○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근무, 암 수술 공상자, 병역명문가
○『교육학개론』,『안전기술과 미래경영』,『ESG 경영전략』공저출판
○ (사)한국ESG학회, (사)소방안전교육사협회 정회원
○ 시인, 수필가, (사)한국문인협회, (사)한무리창조문인협회, 하나로국제문화예술연합회 등














